good 이광수 - 윤광호 독서

 적막과 비애는 어쩌면 사람이 살면서 떼어놓을 수 없는 친우가 아닌가 한다. 겉으로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혼자서 견뎌야만 하는 번민을 감내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내면의 어두움을 적확하게 들어내는 소설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첫 문장은 설국이나 롤리타의 첫 문장에 뒤지지 않는 인상으로 문학사에 새겨져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혹은, 데미안의 주인공이 빛과 어둠의 세계에서 번민하는 사춘기 소년이 아니었더라면 전후 공허함을 느끼던 독자들의 마음을 직격할 수 있었을까?

 윤광호가 꼭 그와 같다. 동경대에 유학을 떠나온 주인공 윤광호는 특대생으로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거두어낸 지위는 분명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윤광호는 마음 한켠의 허전함을 지우지 못한다. 자신과 다르게 생기가 여즉 살아있는 소년소녀들을 보면서 전철 안 알지 못할 열망에 동요하기도 하고, 친우와도 거리가 멀어져 학교 가는 것도 권태롭게 되었다. 그러다 윤광호는 P를 만나 불현듯 그가 자신의 여백을 전충해줄 인연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현대문학이라기에는 사실 얼마간 거리가 멀다. 윤광호의 내면과 일생을 줄줄이 서술할 뿐인데, 등장인물과 윤광호의 관계는 작가가 ‘설명’하는 윤광호에 따라 직접적으로 맺어지며, 그 설명이 작품의 시간 순서와 얽혀 소설적 반전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대저 윤광호의 가장 큰 의의는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개화기 소설인 데서 드러난다 하겠다.

 아쉬운 것은 내가 국문학사에 대해 거진 문외한이라는 점이다. 문학사에서 윤광호가 갖는 의의에 대해서 다루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 다만 그런 독자의 하나로서 윤광호를 읽을 때 작품 외적으로 몰랐으면 좋았을 것은, 윤광호가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인지하고 읽었다는 점이다.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 작가는 힘을 담아 꾹꾹 눌러 쓴 태가 난다. “P는 남자러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 인물은 셋인데, 준원과 P와 윤광호다. 개중 준원의 과거에 따라 P가 남자라는 것을 독자는 짐작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사실 무색케하는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반전으로 남겨놓는 것은 P의 태도이다. P는 윤광호의 구애에 대해 ‘당신이 남자라서’라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일반성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가 편지로 회답하고 그런 이유로 윤광호를 열패자로 정의하여 거절하고 만다. 

 동성애에 대해서 정상인의 시선에서 본 동성애자를 구구절절 서술하고 그에 따라 윤광호를 실연시켰다면 윤광호는 소설적으로 별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일반성에 대해서 윤광호는 자족하던 특대생의 지위에서 열등한 무리의 지위로 끌어내려지고, 그에 윤광호 내면에 자리한 공허가 윤광호를 집어삼키고 맘으로써 윤광호는 독자의 공감을 얻고 비로소 ‘동성애’ 소설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유학을 떠나와 타국에서 모친의 부고를 듣고, 현대 사회 누구나가 그렇듯 스스로도 특정하지 못하는 성공을 위해 학업에 매진하던 윤광호의 일생은 빙세계氷世界였다. 한 번도 애정을 받지 못한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전까지 그런 대로 살 수 있지만, 그 결핍을 인지하는 순간 이제는 물 밖에 나온 어류와 같이 애정의 갈구 없이는 살 수 없게 되고야 만다. 윤광호는 역설적으로 자신 안에 자리한 공허가 어디서 기인하였는지 깨닫고, 그것을 각성케 해준 자에 의해 거절당함으로써 인생에 확답을 짓고 만다. 그 확답은 단지 한 사람에게 받은 것이지만, 그가 윤광호 세계의 전부였다는 점에서 신이 그를 낙인 찍고 내다 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대저, 라고 열면서 윤광호의 가장 큰 의의를 개화기 동성애 소설로 분류하였으나 사실 그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서두에 말했듯 인간의 적막함을 짚는 소설은 그 문장마다에 치명적인 매력을 함유한다. 윤광호의 내면을 되짚어 가노라면 그 심리에 공감하지 않기 힘들다. 그리고 그 공감은, 윤광호의 사랑의 대상이 동성애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분명한 의미를 생산한다. 소설의 쉬운 구성 역시 이러한 생산에 기여한다.

 ‘P는 남자러라.’ 그러나 윤광호의 패배는 P가 남자여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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