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추천사 겸 감상문) 픽 미 업! 장르소설 추천사

#조아라 #웹소설 #퓨전 #판타지 #4점만점에 3점 #헤르모드 #픽미업 #멱살잡고캐리하기

 조립식 컴퓨터를 맞췄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에서 제일 고민하게 했던 건 자꾸만 늘어가는 견적과 어떻게든 더 넣고 싶은 옵션 사이에서 줄어가는 제 잔고였는데, 완제품 컴퓨터와 달리 본인이 옵션을 추가할 수 있다 보니 넣다 보면 끝이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그래서 제 컴퓨터는 ODD가 없습니다. 툭하고 누르면 나오는 CD 넣는 수납기요. 제 컴퓨터에는 필요 없는 옵션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탯창은 요새로 따지면 그런 옵션입니다.

 본인의 필력에 자신이 있다면, 혹은 본인이 생각하는 글의 방향과 전면적으로 배치된다면 안 넣어도 되지만, 일단 넣어서 나쁠 게 없고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편의성이 개선됩니다. 편의성은 곧 독자 수와 직결되는 개념이죠.

 그렇게 스탯창을 옵션처럼 일단 집어넣고 보는 작품들이 많아지자 좀 차별화를 노리겠다 하는 작품들은 단순한 레벨업에 그치지 않고 스탯창에 변주를 줍니다.

 랜덤박스를 뽑는 작품도 있고, 몬스터가 돼서 스탯창을 쓰는 작품도 있고, 무조건 강화하는 작품도 있고, 폰 게임시스템을 빌려와서 어플과 주인공을 연관짓는 작품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생각보다 많은 유형인데, 픽미업은 제일 후자에 속합니다. 그리고 픽미업은 그 중에서도 무척 특별한 형태의 옵션을 선보입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주인공에게는 한 가지 남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는 게임중독자입니다.

 단순한 게임중독자가 아니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기로 유명한 게임 어플의 랭커죠.

 문제는 이 어플이 뽑기 식이라는 겁니다.

 어플 속 세계에는 탑이 있고, 영웅이 있습니다. 100층까지 오르면 탑은 정복되고, 그 정복을 위해 게이머는 영웅을 뽑고 육성하여 100층까지 올라야 합니다.

 뽑기에서 1성부터 5성까지 존재하는 영웅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인물 게이머인 주인공은 이 게임을 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단 하나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운이요.

 다만 주인공이 몰랐던 점이라면 본인이 악운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스스로가 훨씬 운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게임플레이를 하던 와중 주인공은 본인이 즐기던 어플 속으로 떨어집니다. 현대에서 랭커로 대부분의 게이머들 위에 군림하던 그는 이제 다른 게이머의 손에 조작되어 탑을 올라야 할 처지에 처합니다.

 태생 1성, 최하급 천민 영웅으로서요.

 우여곡절 끝에 한 층 한 층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은 이제 탑을 오르면서 그가 몰랐던 어플에 얽힌 비사들을 알아나갑니다.

 옵션은 대개 옵션일 뿐이고, 옵션을 깊게 파헤치는 작품은 드뭅니다.

 예컨대 회귀를 하는 작품은 많지만, 왜 회귀를 하게 되었나를 파헤치는 소설은 그렇지 않은 소설보다 적습니다. 그건 주인공이 강한 힘을 부여받기 위한 일종의 절벽성 기연일 뿐이죠.

 주인공이 무한회귀하는 작품 중 그 회귀 자체가 복선이어서 작품의 결말과 연관되는 판타지 소설로는 다울 작가의 [무한리셋] 정도가 기억납니다.

 이제 그와 비슷한 류의 작품으로 픽미업을 꼽아도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재미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게임화는 주인공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 용도로 이용되지 않습니다. 어플을 일찌감치 깨고난 주인공이 현대에 돌아왔더니 몬스터 세상이 되어 있다거나, 혹은 본인에게만 주어진 히든클래스가 있다거나 하지도 않죠.

 그가 가진 스탯창은 게임 속 영웅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고, 주인공이 주인공답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남기 위해 구르는 일입니다.

 즉 이 소설의 배경만이 어플일 뿐 전개되는 방식은 오히려 더욱 정통스럽다고 할 만합니다.

 미천한 능력으로 시작하여 천천히 성장해나가 무력을 갖추는 주인공,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거대한 세계 단위의 음모, 자신을 이 세계에 떨어뜨린 신적인 능력을 갖춘 빌런.

 감칠맛을 더하는 건, 주인공의 캐릭터와 주인공만이 갖는 특별한 위치입니다.

 바바리안 퀘스트 리뷰에서 비완성형 캐릭터와 완성형 캐릭터에 대해 논한 일이 있습니다.

 비완성형 캐릭터는 범인입니다. [회귀자 사용설명서]의 주인공은 쓰레기 같은 인성으로 적들을 음모에 빠뜨려놓고 간담을 쓸어내리는 캐릭터인데, 그 과정은 재미있지만 그 캐릭터를 완성형 캐릭터라 하기는 어렵겠죠.

 픽미업의 주인공은 완성형 캐릭터입니다.

 뽑기 운만 좋았다면 1위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소리를 듣는 그는 그 외적인 부분에서 완벽한 게이머라는 평가답게 본인의 역량을 어플 속에서도 충분히 발휘해냅니다.

 냉철한 정신으로, 본인이 아는 게임의 지식을 이용해 육성 방향을 정하고, 한편으로 신적인 존재의 악의에 굴복하기보다 적의를 불태웁니다.

 탑을 오르는 그의 행보는 다른 게임 속 영웅이 내심 리더로 그밖에 없다고 인정하게끔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지만 합리적인 판단 하에 이루어지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격렬합니다.

 다행히도 탑을 오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닙니다.

 이 어플은 콘솔형이 아니라 온라인성을 갖고 있고, SNS형 게임의 독립된 섬들처럼 주인공이 관리하던 본인의 도시 역시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주인공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서버 내 최강급 영웅들과 함께요.

 생각보다 만남의 때는 이르게 찾아오고, 주인공은 탑을 오르는 한편으로 그가 게이머로서 만들어놓았던 인연들과도 얽히어 갑니다.

 게이머 밑에서 굴려지는 영웅으로서의 위상과 별개로 그가 가진 게이머로서의 위상을 어플 속에서 어떻게 활용하는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별미입니다.

 여기에 눈에 보이는 듯 긴박하게 펼쳐 보여주는 보스와의 전투씬, 픽미업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글입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영웅의 위계는 1성부터 7성까지 존재하는데, 다른 작품이 다 그렇듯 픽미업에서도 가장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주인공이 1성으로 시작해서 성장해가는 부분입니다.

 주인공이 별을 다는 속도는 후반에 갑자기 스킵되듯 빨라지고 초반엔 느린 감이 있는데, 차라리 초반을 조금 빨리 하면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갔어도 괜찮지 않은가 싶습니다. 2성을 막 논하는 참에 밝혀진 거대한 비밀과 짠 하고 등장하는 6성급의 니플헤임 영웅들은 아기자기하게 힘을 키워가는 주인공을 지켜보던 독자에게 살짝 박탈감을 주거든요.

 이 박탈감은 후반까지 끌고 가는 주인공이 왜 '니플헤임이 아닌 여기서 썩는가'에 대한 의문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너무 빨리 밝혀진 비밀 탓에 중반부 성장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고, 그냥 빨리 손절하고 니플헤임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해요.

 분명한 것은 이런 모든 것이 어찌 됐든 간에 작가의 필력이 이 작품을 부여잡고 있을수밖에 없을 정도로 준수하다는 사실입니다.

 픽미업은 이제 후반부에 들어섰고, 때는 서서히 다가와 주인공은 조금씩 자신을 둘러싼 이 어플 세계의 비밀에 접근해나갑니다.

 무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흥미로운 복선을 얼마나 남겨놓는가가 흔치 않게 재밌는 판타지 소설의 관건이라 한다면, 픽미업은 그 점에서 분명한 합격점입니다.

 랭커 로키 ㅡ 최강급 도시 니플헤임의 정당한 주인이자 1성에서부터 아득바득 기어올라와 일검에 대지를 분쇄하는 초인으로서, 주인공이 어떤 진실을 접하게 되고 어떤 식으로 위기를 타개해나갈지 그 활약을 같이 지켜보고 싶다면 늦기 전에 일독을 권합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skin by m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