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bad 판타지 월드 - 강철의 전사 / good 어느 소드마스터의 일기장 #조아라 #퓨전 장르소설 추천사

#조아라 #퓨전 #지구인이소드마스터가 되는 방법


‘이세계에 떨어지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한 상상입니다. 즐거운 상상 속의 우리 모습은 대마법사나 소드마스터가 되어 이세계인들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상상에 현실성을 곁들이면? 몽상은 추리로 전락하고 어느덧 소드마스터일 터였던 스스로의 모습은 하잘 것 없는 졸병으로 추락하기 마련입니다.

정말 이세계에 현대인이 떨어진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아무래도 대리만족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우리가 읽는 소설인 만큼 이계에 떨어진 현대인은 승승장구해야 하기 마련이고, 개연성에 알맞도록 작가들은 머리를 쥐어짜 갖가지 이유를 생각해냅니다. ‘기연’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면 좋고, 거기에 그럴 듯한 이유가 더해질수록 머리는 아파지죠.

몇몇 작가가 내세우는 ‘현대인 천재론’이라는 이 그럴 듯한 이유는 의외로 세간의 흥미를 사는 것 같습니다. 나무위키에서 이 항목을 찾아보면 무척 많은 사람들이 그 현실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거든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결과는 쉽게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양민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 보통의 판타지 세계관에서, 검술 하나 모르고 살던 지구인이 이계에 떨어진다고 대뜸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보다는 지나가던 오크에게 죽어 변사체가 될 확률이 더 높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계에 떨어진 현대인이라는 재밌는 가정에 대해, 그 현대인이 소드마스터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무척 설득력 있게 제기해낸 두 소설이 있습니다.

그것도 서로 완벽하게 다른 방식으로요!

<판타지 월드 - 강철의 전사> #4점만점에2점 #너네힘다내꺼

주인공은 여느 날처럼 이계에서 평온한 하루를 보냅니다. 평온하다고 하면 약간의 어폐가 있겠죠.

주인공이 겪는 이계의 실상은 말 그대로 중세 시절의 그것입니다. 금화 하나하나를 모으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하고, 강해지기 위해 퇴역병으로부터 검술을 배웠지만 제 나이 소년보다 조금 강할 뿐 검기가 튀어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열악한 이곳에선 ‘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기 충분하죠. 주인공은 교활한 중세인들과 자신의 머리로 대거리를 해나가면서 평온하지만 그 나름대로 치열하게 조금씩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나가고 있습니다.

한편, 딱히 특별한 걸 접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이지만 ‘비기’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는 조금씩 강해지는 계단을 밟아나가게 됩니다. 비기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기사들이 싸우면서 터득한 상대를 엿먹이는 방법 중 생각보다 높은 생존률을 보장해준 몇 가지, 별 것 없는 눈속임 한 번도 이능의 힘에 거의 기댈 수 없는 이곳에선 생사를 가르니까요. 비기라고 할 만합니다.

비기만으로 이곳에선 충분히 강한 축에 들지만, 그래서야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없겠죠. 어느 날, 주인공은 꿈 속에서 어떤 거대한 존재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평범하게 산다면 평생 사제 한 번 볼 일 없고 악마는커녕 귀족조차도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인 존재로 비치는 세상에서, 주인공에게만 찾아온 기회인 거죠.

신도 악마도 없습니다. 이용하려면 모든 것을 이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중세, 초자연적인 기연이 찾아왔다면 종교를 찾는 것보다 이제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이용해야 강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볼 일입니다. 

어떤 식으로 아득바득 강해지는지, 평범한 소설에선 잡몹에 불과한 오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미약한 시작에 불과했던 소년이 어떻게 소드마스터가 되어 창대한 끝을 맺으려는지 그 처음부터 같이 하고 싶은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어느 소드마스터의 일기장> #4점만점에3점 #지구행성에서날아온슈퍼맨

요새 판타지를 보면 영어 학습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오러심법이니, 소드 비기너니 엑스퍼트니 스페셜리스트니, 그랜드 소드마스터니 소드 마에스트로니 심지어 마인드 소드까지. 그냥 ‘강했다’ 한 마디로 충분하고 그 이상은 묘사에 기대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어느 소드마스터의 일기장, 줄여서 어소일은 이런 독자의 마음을 잘 충족시켜 줍니다.

이 작품의 소드마스터는 오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죠.

소드마스터인가 아닌가, 그 구분만이 있을 뿐 무력은 순수하게 무력입니다. 게다가 소드마스터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것 같네요. 어떤 이종족은 마왕을 꼬셔 대대로 강력한 흑마법의 혈통을 이어나가기도, 어떤 용은 아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고대 암흑제국을 멸망시키고, 하계에 신이 직접 관여해 은행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소드마스터 위의 그랜드 소드마스터나 그랜드그랜드 소드마스터까지 만들어 놓아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요.

주인공 역시 드물다면 드물지만 그렇다고 대체 불가능한 것도 아닌, 적당껏 흔한 소드마스터의 하나입니다. 성장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판타지 월드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의 분량이죠. 한 작품이 소드마스터를 향해 달려간다면 한 작품은 소드마스터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소드마스터라고 해서 정신까지 강한 것은 아닙니다. 지구인인 자아도, 날파리 치우는 것처럼 목을 날려대는 이계인으로서의 자아도 모두 자신의 것이고, 주인공은 그 가운데 혼란을 겪으면서 한편으로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뚝심있게 밀고 나갑니다.

무엇이냐고요? 바로 싸움박질!

인간관계도 중요하고,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즐겁고, 드워프가 벼려준 명검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강해지는 것에는 비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강해져서 뭘 하냐? 전에는 못 붙었던 센 놈을 찾아 싸움박질할 겁니다. 그래서 더 강해지면? 이제 더 센 놈을 찾아야겠죠. 

다행히 이 세상에는 소드마스터는 개미 콧바람으로 아는 존재가 넘쳐나고, 어떤 초월자는 이 미친 소드마스터를 사랑스러워 하다 못해 얼른 도전하길 바란다고 응원해주기까지 합니다.

때로는 검술을 성장시키면서, 그리고 검술의 성장과 같이 하여 지구인으로서의 자아를 자각하기도 하면서, 주인공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성장해나갑니다. 정체성을 곧게 해나가는 주인공의 성장기는, 그 목표가 싸움박질 하나로 뚜렷해서 때때로 혼란을 겪어도 그 여정이 즐겁게 읽힙니다.

이상의 두 작품을 줄여 말한다면, 이세계를 여행하는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라고 하겠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맨몸의 현대인이 소드마스터로 우뚝 서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가능한 한 설득력 있는 가정이 궁금하시다면 이 두 작품을 추천합니다. 











(조아라 노벨마스터로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blog.naver.com/joarablog
httpL://ajtdltdma.egloos.com

not bad 조아라 소설 추천 / 과금무적 / 퓨전 #레드에이어 #무협 #과금 장르소설 추천사

#조아라 #퓨전 #노블레스 #과금무적 #레드에이어 #4점만점에2점 #흑우가또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로부터 시작한 게임 판타지 장르가 가상현실 게임 세계관의 붐을 일으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TGP1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거나, 더 월드 같은 광대한 퓨전 판타지의 세상, 리바이벌의 TRPG 세계관, 달빛조각사의 히든클래스 시스템이라거나 그로부터 이어지는 아크나 하룬 등의, 정말 실제로 플레이하고 싶게끔 만드는 게임.


급기야는 게임 판타지 특유의 게임 시스템을 빌려와 현실에서 강해지는 장르가 흥행하기 시작했는데요. 그저 스탯을 보여주는 정도에서 시작했던 시스템창은 이제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별처럼 많은 주인공들을 능욕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능욕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던가, 비현실적 대리만족의 극치를 위해 달려가던 스탯창은 한 바퀴 돌아서 이제 현실의 모바일 게임 시스템물까지 베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과금 시스템입니다.


체나 작가가 <뽑기 마스터>, 혹은 이미 완결난 헤르모드 작가의 <픽 미 업!>에서 한 차례 선보인 바 있었던 과금 시스템이지만, 차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각 작품을 볼 때마다 이 작가가 아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과금 시스템을 특색에 맞게 녹여내었다는 점이겠죠.


그리고 레드에이어 작가는 어쩌면 이 작품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 정도로 과금 시스템에 패배한 유저, 속칭 개돼지의 모습을 잘 그려냅니다.


그렇다고 개돼지의 애환만이 이 작품의 특기할 만한 매력 포인트는 아닙니다.


레드에이어 작가는 글을 쓴 지 십여 년이 넘어가는 관록 있는 작가인데요. 노블레스란이 삼국지 여체화의 붐으로 몸살을 앓았을 때 나타나 관련 시리즈물로 인기를 얻었던 경력이 있습니다.


유료화 시장이 커지고 필력 있는 작가들이 대거 뛰어들자 꺼져드나 싶었던 레드에이갓은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전과는 다른 몇몇 작품들을 손에 쥐고 돌아오고, 엄청 메이저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조아라 노블레스판에서는 그럭저럭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징이라면 필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지만 적당히 사악한 주인공을 쓰는 데 뛰어나다는 것.


그런 탓에 비장미를 연출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어서, 12년 조아라 공모전에 익명으로 내보인 무협작의 실패 이후로 다시 무협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그 자신에게 맞춤옷처럼 어울리는 퓨전 무협의 틀을 찾은 듯 싶네요.


레드에이어식 주인공에 맞게, 주인공은 개인주의적이고, 극악무도하지는 않지만 잇속에 밝으며, 위기에 닥치면 머리를 굴려 상황을 타개하는 잔머리 역시 갖추고 있습니다.


인생의 나락만이 모여드는 진주 하통, 그곳에서 어떻게든 삶의 다음 단계만을 바라보며 나아간 끝에 겨우 안정된 직장에 취직했다 싶었던 하인 서윤은 어느 날 자신의 고용주 일가가 통째로 살해당하는 참극을 목격합니다.


그 도살극을 저지른 것은 그가 생전 본 적 없던 살인귀들, 물론 우리의 서윤은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 희생할 생각이란 눈꼽만큼도 없었죠. 대신 그는 이제 파산한 직장에서 겨우 한 가지 잡동사니만을 퇴직금으로 챙겨 나옵니다. 제법 튼튼해보이는 철상자.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철상자에서 나온 것은 과금 시스템이라는 뜻밖의 기연이었습니다. 머리 좋은 서윤은 금방 과금 시스템의 가치를 깨닫고, 이제 뽑기의 노예가 되어 퀘스트를 깨가면서 이제까지 진행해왔던 삶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말했듯 필력이 좋다고는 할 순 없지만, 과금 시스템과 주인공이 그걸 이용해 성장해가는 재미, 분명히 강한 건 아닌데 고구마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철저하게 잇속에 밝은 주인공, 이리저리 엮여드는 인연들은 주인공이 이번에는 어떻게 더 강해질까 하는 기대감과 더불어 양산형 장르소설을 읽는 데 익숙한 독자에게도 만족할 만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남을 위해서라면 절 한 번 하지 않을 주인공이 뽑기를 하면서 지성으로 삼천 배를 올리는 등 가챠없이 개돼지로 전락하는 모습은 거기에 토핑된 재미라고나 할까요.


한 줄로 요약하면, 무협에서 개돼지가 강자로서 성립하는 방법! 정도가 되겠습니다.


어떤 방법일지 흥미가 돋는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good 민수 - 케미 장르소설 추천사

#조아라 #웹소설 #현대 #화학 #4점만점에 3점 #김민수 #케미 #화학자다비켜주인공나가신다


어릴 적 퇴마록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는 그게 실제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좀비가 있다, 없다의 문제로 어머니랑 싸우다가 사실 소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네요.


그 와중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이우혁 작가의 말도 여전히 기억에 있습니다. ‘내 소설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딱 특정지어 말하기 참 모호한 장르다…’


오우거를 때려잡는 판타지 세상이 득세하던 시대에 현대를 배경으로 한 퇴마사 일행의 여정은 그토록 센세이셔널했습니다.


지금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는 넘치고 넘치고도 모자라서, 현대 판타지라는 새로운 수요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도심을 배경으로 한 속에서 우리는 이제 갑자기 포탈을 통해 나온 몬스터를 때려 잡거나, 이계에서 귀환한 절대자가 되어 암흑가를 일통하거나, 혹은 그런 이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요리나 연예계의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기도 합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기 마련이고, 사람은 익숙한 재미보다는 낯익은 재미를 찾는다는 점에서 현대 판타지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비슷한 재료로 누가 더 뛰어난 맛을 만들어내는가 정형화된 포맷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리물, 연예계물, 레이드물, 재벌물, 기타 등등… … . 여기서 벗어나는 작품은 그만큼 재미있어서 독자를 끌어들이던가, 혹은 실패하던가 둘 중 하나겠지요. 뛰어넘거나, 떨어지거나.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려면, ‘전혀 몰랐던 재미 - 화학적 재미 - 를 개척한’이라는 수식어가 빠질 수 없겠습니다.


화학 판타지, 민수 작가의 ‘케미’입니다.


첫 편은 주인공의 임상 실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느 나라보다 임상 실험 지원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한국의 청년답게 주인공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임상 실험에 지원하는데요. 모두가 잠든 와중에 혼자 어두운 병실 안에서 깨어난 주인공, 이후 그는 임상 실험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담당 의사를 만나고 KG화학의 입사계약서를 쓰면서 그것이 단순한 임상 실험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화학자의 길을 걸어나가게 되죠.


처음에는 단순히 취업에 성공했던 것에 좋아했던 주인공은, 이후 화학자로서의 행보를 걸어나가면서 점차 세계에서 인정 받는 명사로서 자신만의 발걸음을 화학사에 새겨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닥쳐 오는 일상의 사건들에 일류 화학자 명사로서 개입하거나, 혹은 연애 밀당을 하거나, 혹은 임상 실험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좌충우돌하거나 하기도 하죠.


화학의 히읗 자도 모른다고 해서 작품이 재미없을까 하는 염려는 필요 없습니다.


작가는 독자가 어떤 데서 재미를 느끼는지 잘 꿰뚫고 있고, 일류 화학자들 앞에서 그들조차 놀라워하는 성과를 내놓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런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갖가지 사건들은 어떻게든 그걸 해치우고 나가는 주인공의 지능으로부터 독자에게 ‘화학적 쾌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점차 상승하는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는 일개 청년 백수로서의 처음부터 지켜와봤던 독자에게 어떤 감명까지 느끼게 만들죠. 주인공이 외는 화학식은 알면 좋을 수도 있을 테지만, 없어도 전혀 상관없는 미세한 조미료 정도랄까요? 그 조미료가 화학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MSG와 약간 닮기도 한 것 같습니다.


챕터를 보면 에피소드를 뚜렷하게 구분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한 챕터를 시작할 때 그 챕터가 어떻게 진행될지 이미 기승전결이 뚜렷이 계획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성 작가답다고 하고 싶네요. 챕터마다 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에게 어떻게 다양한 위기를 안겨줄지, 어떻게 화학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지 작가의 고심이 엿보입니다.


기성 작가라고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민수 작가는 본래 무협으로 유명했던 작가입니다. 아마 이 리뷰를 읽는 몇몇은 분명 책방에서 본 기억이 있을 ‘외공&내공’에서부터 시작해서, ‘찰나의 유혼’으로 이어가던 성공작의 경력은 한참동안 끊겨 있다가 ‘잔혹협객사’로 문피아에 복귀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2부 ‘비정자객사’를 연재하던 민수 작가는 ‘케미’의 전작인 ‘포텐’으로 현대 판타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이르는데요.


독자가 이입하기에 좋은 주인공을 쓰는 데 재주가 있었고, 단순히 복수에 미친 살인귀라거나 절대자가 아닌 말 그대로 독자친화적인 주인공이 헤쳐 나가는 무림의 사건들은 민수 작가를 눈여겨 볼 만한 작가로 기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잔혹협객사에 이르면 작가가 말한 것처럼 미드 덱스터를 무협지로 읽는 느낌이랄까요.


자객을 주인공으로 했던 비정자객사는 사실 제게는 그닥 좋은 평을 주기 힘들었지만, 이후 포텐으로 돌아와 아직 죽지 않은 필력을 과시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케미’로 현대 판타지의 새로운 장을 썼다고 하고 싶네요. 어떤 외적인 전기적 요소도 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케미는 사실 ‘판타지’가 아니죠. 순문학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장르소설 특유의 쾌도난마하는 성격을 갖지만, 책으로 내놓아도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문제는 사실, 작가의 필명으로부터 기억할 점은 이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민수 작가는 고질적인 연중병으로 유명합니다. ‘찰나의 유혼’의 주인공은 아직도 찰나일 것만 같던 연중에 머물러 잊혀 있고, 포텐 역시 잦은 연중을 겪다가 완결 직전에 긴 휴재에 들어가게 됩니다. ‘켠김에 지옥까지’의 작가는 완결 챕터 직전 있던 긴 휴재에서 돌아오면서 ‘완결을 더욱 완벽하게 쓰고자 싶은 마음’이 연중의 원인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포텐이나 케미나 종장에 가까운 지점에서 있던 연중이라는 점에서 아마 비슷한 동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연중작이라면 추천을 하지 않았겠죠?


다행히도 케미는 돌아왔고, 주인공은 특유의 화학적 성찰로 잠시나마 끊겼던 행보를 이어갑니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갖가지 약물을 연금술사처럼 연성해내지만, 안타깝게도 다시는 연중하지 않도록 하는 약물은 현실에 없겠지요.


그런 약물이 나오길 바라면서,


‘화학적 재미’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신 분께 민수 작가의 ‘케미’를 권합니다.




워마드로 돌아보는 가상 사회 - <이정우, 여러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를 읽고 독서

 시뮬레이션이 벌어지는 장소인 가상 세계는 현대에 와서 새롭게 대두된 개념이다. 이 심상의 세계는 디지털에 근거한다. 스마트폰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인은 일상의 한편으로 언제나 이 가상세계를 영위하게 되었다. 가상 세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겪어진다. 하나는 이미지의 세계이다. 인류 역사와 줄곧 동반해온 꿈의 세계는, 디지털의 발달과 더불어 문학에서 영화, 영화에서 더 나아가 가상 게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현실 세계에 부속하는 가상의 사회이다. 이 가상 사회는 현실의 권력과 밀접한 경향을 띤다.


 가상사회를 누리는 대중화된 방식은 SNS이다. 이미지의 세계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시뮬레이션에 연관되어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를 갖는다면, 가상 사회에서는 주체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다. 그들은 익명성을 통한 아바타를 갖고, 담론을 통해 공통의 추상적 시뮬레이션을 정립하여 현실의 권력과 연결짓는다. 언뜻 이러한 목적의식적 활동을 굳이구분지어 가상 사회로 부를 필요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상 사회는 그 기반을 가상 세계에 두어거의 모든 의견 교환이 가상 세계에서 이루어지며, 가상 세계의 특성상 열린 접근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가장 쉬운 가상 사회의 예시는 남성 혐오 웹사이트인 워마드이다.


 워마드가 가상 사회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상 사회는 가상 세계에서 다른 군집과 해당 사회를 구분짓는 가상세계상의 국적이 있어야 한다. 최순실 사건 때 온 국민이 가상 세계에서까지 들고 일어났지만 가상 사회로 구분짓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담론이었을 뿐이지 어떤 조직적 활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워마드는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만, 그 방식은 제 3 세계의 여아들이 쓰기에 적절한 생리대를 후원하거나 위안부 관련 활동 등의 부외자가 공유할 수 있는 이념이아니다. 느개비나 한남충, 유충 살해나 소추 및 루저페이로 대변되는 한국 남성 혐오의 문화적 특질을 갖고, 그 문화를 영위하기에 적절한 구성원이 제한되므로 워마드는 가상 사회라 할 수 있다.


 가상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현실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다. 종착역을 가상현실로 삼는 꿈의 세계 역시 현실의 자본에 기반하지만, 그 세계 자체는 현실과 동떨어진 완벽한 비현실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가상 사회는 도리어 가상 사회에서 정립된 공통의 시뮬레이션을 공유하고,그에 따른 본인들의 기치를 현실에서 구축하려 노력한다. 가상 세계의 권력이 현실로 역행하는것이다. 이 시뮬레이션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가상 현실을 닮기도 한다.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주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 그것을 일종의분열증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에 이르러서, 가상 세계에 잠식되는 것과 가상 세계의 자신을 구분할 필요성이 떨어지고,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가상 사회의 자신으로서 현실에서 활동한다면 더 이상 분열증이라 할 수 없다. 일부가 앓는 비정상은 병증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모두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이 아니라 현상이 되기 때문이다. ‘가상 사회라는 단어를 대두시키고, 그에 따른 폐단에 유의해야 할 때가 왔다.


 가상사회는 현실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법과 도덕을 위배하기 쉽다. 2004년의 미네르바 사태나 최근의 드루킹 사태에서 드러난 일련의 조직적 가상 세계 행위 역시 가상 사회로 이해할 수 있으나, 결국 모두 검찰 수사를 받는 결말을 맞았다. 웹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나 워마드 역시 세월호 사태를 조롱하거나 남자 화장실 몰카 영상을 공유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인다. 현실 세계의 인과를 분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본인들의 논리로 정립한 시뮬레이션을 우선한다면, 현실 세계의 가치는 부가적인 것으로 떨어지기쉽다. 초창기 가상 세계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간의 혼동을 우려했다.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가상 사회가 미치는 현실에의 영향에 경각심을 느끼고가상 사회가 창출해낼 수 있는 건전한 담론을 형성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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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감상문 레포트


여기서 에이쁠 맞아야 총 에이 나올 텐데

애매

교수가 페미니즘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내 능력으로 저 논문 읽고 그거밖에 안 떠오르는 걸 어떻게 하냐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어벤져스 3 : 인피니티 워> 영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에는, 세계의 농업생산력은 120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데 60억 인구 중 30억은 여전히 굶주린다는 내용이 해설되었다. 한참동안 잊고 있던 그 책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교양 수업에서 게임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듣던 도중이었다. 모두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선택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그 이론을 들으면서 나는 인류 절반이 겪는 불합리한 굶주림의 본질에 대해 뭔가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라면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이하 어벤져스3)에는 그러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타노스다. 작중 우주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지성체의 인구는 점점 늘어간다. 여러 행성이 멸망하는 가운데 타노스는 인구를 줄이면 된다는 해답을 내세우고, 전능함을 부여하는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 우주를 구원하려 한다. 지구의 영웅들은 그런 타노스를 미치광이로 규정하고 인피니티 스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결국 갈등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전체는 부분에 우선하는가?


타노스와 영웅들이 싸우는 이유는 이에 대해 서로 다른 사유가 부딪치기 때문이다. 우주가 겪는 인구 문제에 있어, 타노스는 구성원 개인이 가족 등을 잃는 불행을 겪더라도 전체의 안위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 타노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즉 타노스에게 있어 개인은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개념이다. 반면, 지구의 영웅들은 개인을 우선한다. 영웅들은 타노스가 내세운 방법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집단의 구성원이 집단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영웅들에게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언뜻 이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 이미 우리는 해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중순, 세계대전이라는 과오를 통해 전체주의는 옳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벤져스3에서 타노스가 내세우는 ‘전체’는 국가가 아니다. 말 그대로 우주의 ‘모두’를 말하는 것이고, 타노스는 따라서 공익의 기치를 내세우는 인물이 된다. 우주의 파멸을 막기 위해 다소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일단 옳은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그에 반하면 영웅들은 다분히 개인주의적이다. 미래의 우주가 어떻게 되든 일단 본인들의 터전인 지구를 지키려 한다. 그렇다고 대안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며, 당장 눈앞의 희생을 볼 수 없을 뿐이다. 말 그대로 ‘개인’을 위한 선택, 따라서 타노스가 던진 난제는 해답이 없는 가치판단의 문제로 비화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예전부터 오랫동안 철학에서 다루어왔던 딜레마 중 하나다. 살면서 이와 비슷한 많은 가치판단의 사례를 겪기도 한다. 타노스의 난제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국가, 인류를 넘어선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세상을 지키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데, 그게 나라면? 영화는 궁극적으로 다음의 선택지를 감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피니티 스톤을 손에 넣은 타노스가 인구의 절반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죽는다. 즉 나만 살고 모두가 죽던가, 모두를 살리기 위해 내가 악역으로 전락하던가.


최선의 합의가 희생을 전제로 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적은 비용을 감당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할 것인지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이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희생을 겪고, 때로는 남에게 그 희생을 같이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자가용을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것은 이미 합의된 희생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타노스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은 타노스가 인구의 절반을 무작위로 소거하면서 본인까지 그 범주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본인의 생존에 대해 놀랐다는 것이다. 최소한 본인만큼은 희생 당하는 것에 동의한 셈이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크고 작은 대의에서 우리가 가장 옳은 타결을 위해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 그 희생이 타노스가 만들어낸 것처럼 합의되지 않은 강요라 해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일 것인지 한 번쯤은 우주적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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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대신 내는 과제였는데
제발 B 밑만 나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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